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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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 [2023년 10월] [특별기고] ①R&D예산 삭감은 '저수지 고갈'시키는 것

  • 관리자
  • 2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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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전세계를 강타했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 대유행 기세가 잦아들었다. 감염병 사태에서 뜨겁게 달아올았던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대한 관심도 다소 꺾인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감염병 유행이 절정에 달했을 때 부각된 백신·치료제 개발역량 부족에 대한 경각심도 동시에 사그라들었다고 우려를 표한다. 특히 내년도 정부 주요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으로 코로나19 등 감염병 사태로 얻은 교훈인 '연구개발 지속'이 이번에도 외면받을 위기에 처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신종 감염병은 또 나오기 마련이며 발생 주기도 짧아지고 있다고 본다. 언제든 새로운 감염병에 대응할 수 있는 백신·치료제 개발 역량을 확보해야 하는 이유를 5회에 걸친 전문가 기고문을 통해 살펴본다.

연구개발을 국가가 지원하게 된 이유

작금 연구개발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 특히 과학연구에 몸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부 주도의 지원을 당연하고 익숙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그러나 긴 인류 역사에서 정부 주도 과학 연구 지원은 극히 최근에 시작됐다.

19세기 중반까지는 운 좋게 유족한 집안에서 학문과 연구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자질을 가지고 태어난 행운을 누린 극소수가 자신 또는 가족의 돈으로 자신의 취미생활을 지원한 경우가 그 한 갈래다. 여기에 속하는 유명 연구자로는 만유인력 상수를 처음 측정한 헨리 케번디시나 ‘보일의 법칙’으로 유명한 로버트 보일이 있다.

다른 한 갈래로는 갖은 사치, 향락, 오락을 향유하던 대부호나 귀족들이 음악가나 화가들을 지원하던 연장선상에 똑똑함을 재능으로 가진 과학자와 기술자들의 재주를 완상하기 위해 연구를 지원한 경우가 있다. 여기에 속하는 대표적인 연구자로는 메디치가의 지원을 받았던 갈릴레오 길릴레이가 있다.

과학 연구 지원이 공공의 영역으로 들어온 것은 19세기 중반 대학 설립 러시가 일어났던 독일에서였다. 각 지역별로 설립된 대학들이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대학의 역할이 후학을 가르치는 단순 교육기관을 넘어 새로운 철학과 과학적 발견을 지향하는 연구중심대학으로 발전해 나가면서였다.

이때부터 대학은 단순한 교육기관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는 기능을 수행하게 됐다. 프로이센이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통일독일이 성립되어 급속한 공업 발전이 이루어지면서 대학은 산업발전의 역군인 기술자와 연구자를 양성하는 역할을 떠맡게 되었다.

비슷한 시기 영국에서 설립된 대학들 역시 대영제국의 식민지 확장에 필요한 연구를 수행했다. 연구 과정에 참여한 학생들은 새로운 지식을 축적하고 이를 기반으로 더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창출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추고 사회로 나와 국가 발전의 주축이 됐다.

영국과 독일을 추종하던 일본도 19세기 후반부터 과학기술 연구중심 제국대학들이 설립돼 일본을 선진국 반열에 끌어올린 인재들을 배출했다. 19세기 후반부터 선진국의 대학들은 연구개발을 통해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창출하고, 이 과정을 통해 양성된 인재들이 창출된 지식과 기술을 더욱 발전시켜나가는 선순환 지식생태계를 만들어왔다.

역대 노벨상 수상자들은 이러한 서구 대학 연구개발 및 교육 생태계의 발전과정에서 양성되고, 새로운 지식과 기술들을 창출하여 인류 발전에 기여해왔다. 이러한 연구개발의 역사를 충분히 축적해오지 못한 우리나라에 아직 과학기술 부문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한 것은 받아들일 수밖에 현실일 것이다.

그러나 이때까지는 국가가 연구자금을 모아 일정한 규칙에 따라 배분하는 역할에 그쳤고, 연구개발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중장기 연구정책을 세우거나 하지는 않았다. 지금처럼 국가 차원에서 정부가 나서서 연구정책을 수립하고, 국가가 연구자금 공급의 대주주가 된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다. 두 번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국력과 과학기술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은 일반대중도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남궁석, [alookso] 과학연구비의 역사(https://alook.so/posts/XBt36dl))

최근 화제가 된 영화 ‘오펜하이머’에서 보듯이 국가의 멸망을 막고, 전쟁에 승리하는 데 과학기술의 우위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오펜하이머 같은 과학자가 일반대중들이 열광하는 셀럽이 되는 세상이 되고, 연말이 되면 지구상 거의 모든 매체들이 누가 노벨상을 수상하였고 그 수상자들의 업적이 어떤 것이었는지 넓은 지면을 할애하여 소개하게 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연구개발 자금은 국가가 재주 있는 소수에게 국가가 내려주는 ‘시혜’라기 보다는 국가 발전을 추동하는 엔진을 돌리는 필수불가결한 연료 역할을 하고 있다.

한 국가의 경쟁력을 비교하는 지표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고, 이러저러한 기관들에서 분석결과들을 내놓고 있다. 세계지적재산기구(WIPO)는 전 세계 국가들의 혁신수준을 측정해 ‘세계혁신지수’를 발표하고 있으며 이는 국가들의 경쟁력을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2022년 우리나라 세계혁신지수 순위는 스위스, 미국, 스웨덴, 영국, 네덜란드 뒤를 이어 6위를 기록하고 있다. 중국이 11위, 일본은 13위를 기록하고 있다. 세계혁신지수는 혁신 투입, 산출 지표를 표준화한 후 통합평가하여 산출되는데 우리나라를 세계 6위로 만든 혁신 투입 지표 중 가장 중요한 부문은 인적자원 및 연구로서 4년째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제도 부문은 31위, 인프라는 13위, 시장성숙도는 21위를 기록했다. (김선경, [KISTEP 브리프 47] 2022년 세계혁신지수 분석)

미국과학기술진흥협회(AAAS)의 분석에 따르면 이스라엘과 한국은 R&D 및 혁신에 대한 상대적인 집중이 세계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으며, 특히 공공 R&D 집약도, 민간 R&D 집약도, 경제활동인구 천 명당 연구원 수에서 세계 1위로 나타났다 (한혁, [KISTEP 브리프 81] 미국 R&D와 혁신 현황 ). 다시 말해 대한민국을 선진국 반열에 오르게 한 가장 큰 동력이 연구개발 이었다는 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국가 R&D 예산 삭감은 필연적으로 국가경쟁력 저하로 귀결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연구는 사람이 한다. 연구소와 연구중심대학은 국가발전 위한 저수지 역할을 한다"

성공적인 연구개발을 위해서는 좋은 시설과 첨단 기자재가 필요하지만 이들을 사용해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창출하는 것은 사람이다. 연구개발의 목적이 새로운 지식, 기술, 신제품 창출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인재양성이다. 신지식, 신기술, 신제품은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것들에 의해 대체될 수밖에 없다.

그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것은 사람이고, 그 사람들은 지난 연구개발 과정에서 그 능력을 획득한다. 이는 하루 이틀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훈련과정의 연속성이 끊어지면 소정의 완성도를 성취하는 데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새로운 지식, 기술, 제품은 연구개발 과정에서 축적된 노하우, 실패와 성공의 경험들이 쌓여서 창출된다. 지금 가장 주목을 받고, 인류의 미래를 견인할 것으로 평가받는 인공지능(AI)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고, 컴퓨터 과학 및 공학 연구를 수행하던 사람들의 집단지성과 연구결과들이 모여 태어난 것이다.

앞 단에 충분한 연구자금이 투입돼 창의적 연구결과가 도출되고 그 결과들을 이용하여 더 새로운 주제인 AI를 도출한 것은 그 선행 연구팀에 대학원생과 포닥으로 젊음을 갈아 넣었던 연구자들이다. 10년 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2023년에 AI가 주류과학이 되리라 짐작했을 것인가. 수학, 물리학, 공학 등 일견 AI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분야에서 기본 지식과 자질을 닦은 인력들이 AI라는 새로운 학문과 기술을 창출한 것이다.

대학생이 대학원생이 되고, 대학원생이 포스트닥터가 되고, 포닥이 교수 또는 책임연구자가 된다. 국가 연구비는 이 중요한 인재들이 무럭무럭 성장할 수 있는 기회와 환경을 제공한다. 저수지는 쓸모없어 보이는 물을 차곡차곡 채워놓았다가 기를 곡물이 생기면 논과 밭에 농업용수를 제공하고, 만들 공산품이 있으면 공업용수를 제공하고, 전기가 필요하면 발전기를 돌린다. 이 생태학적인 고리가 크게 훼손되지 않아야 한다.

전략적인 연구과제의 경우 보통 3년에서 7년 정도의 계획으로 진행되고, 이 계획은 전문가 집단의 충분한 검증과 다른 연구팀들과의 치열한 경쟁을 통해 선정되고 연구관리기관 또는 부처들과 계약을 거쳐 수행되고 있다. 거기에 맞추어 대학원생, 포닥, 연구원들을 뽑아 연구팀을 꾸린다. 국가연구개발사업 조사분석 보고서에 수록된 국가연구비 지출 내용을 보면 대학과 출연연구소의 경우 인건비가 30% 정도를 차지하고, 연구 직접비로는 55-60% 정도가 투입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KISTEP [국가통계] 2021년도 국가연구개발사업 조사분석 보고서)..

시약, 재료 등을 사용하지 않고 연구가 이루어질 수 없고, 계약을 통해 설정된 연구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지출을 피할 수 없다. 설사 부족할 경우 외상으로 구입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학원생, 포닥 인건비는 경직성 경비로서 정해진 날짜에 반드시 지불되어야 한다. 연구책임자 입장에서는 연구비가 삭감되면 제일 부담이 되는 것이 인건비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비정규직 포닥부터 계약을 해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포닥이 어느 연구팀에서나 연구 실무진행에 있어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대전 지역 출연연구소에서만 1200명의 연구원이 연구현장을 떠나게 되었다 한다. 출연연구소의 연구기반이 무너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팬데믹 시대 국가 보건에 대한 우려

보도에 따르면 여러 분야의 연구비들이 10여 퍼센트에서 80퍼센트 이상 삭감될 예정이라 한다. 필자가 종사하고 있는 감염병, 백신 분야 삭감률이 상대적으로 높을 것이라는 우려가 이곳 저곳에서 들리고 있다. 코로나19의 불씨가 잠재되어 있는 상황에서 심각하게 우려된다.

아마 백신이나 치료제 개발 연구에 많은 연구비가 투입되었으나 손에 쥐어지는 결과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부정적인 평가가 내려졌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새로운 백신이나 치료제의 연구개발이 불과 한두 해 안에 끝날 성질의 것이 아니고 실제 임상에 사용되었던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투입된 천문학적인 자금의 규모를 생각하면 너무 성급한 판단이 아닐까 싶다.

비록 실제 임상에 투입될 정도의 완성도를 가진 백신이나 치료제의 숫자가 적다하더라도 분명히 실재하는 결과가 존재하고, 그 과정에서 대한민국이 이 분야의 주목받는 거점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전혀 과장되지 않은 사실이다. 또한 연관분야 전문가들이 팬데믹의 위험성과 백신주권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연구방향을 재조정하여 본격적으로 연구개발에 뛰어듦으로써 국제적 경쟁력을 기약할 수 있는 결정적 규모(critical mass)가 형성되기 시작한 시점에 연구비 삭감으로 분위기가 냉각되고 현실이 우려스럽다.

미국의 경우 보건부 산하에 'BARDA'란 조직을 두어 바이오테러, 인플루엔자 팬데믹, 새롭게 출현하는 질환들에 대한 의학적 대안 개발을 책임지도록 하고 있다. 2023년 예산은 무려 8억 3000만 달러에 이른다. BARDA의 COVID19 관련 연구개발 포트폴리오는 무려 129개나 되며 이를 통해 모더나와 화이자의 mRNA(메신저리보핵산) 백신, 팍스로비드, 항체치료제 등이 개발될 수 있었다. BARDA에 관영하는 부처는 보건부 뿐만 아니라 국방부도 관여하고 있다.

이 조직 발족의 직접적 계기는 2001년 탄저균 공격이었고, 바이오테러 대비를 앞세우고 있지만 미국내 유관 연구기관과 기업들의 혁신을 견인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80개가 넘는 품목의 약품, 진단키트, 의료기기 등이 BARDA의 도움으로 FDA 허가를 획득하여 전세계 시장에 진출하였으며, 1390개 이상의 파트너로 구성된 네트워크를 운영하고 있다.

BARDA 투자는 미국 국민들의 안녕을 유지하는데 우선적으로 사용되며 한편으로는 의료산업을 견인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지금 새로운 코로나바이러스 변종들이 보고되고 있으며 새로운 팬데믹 위험의 경고가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 분야 연구개발에 뿌려진 씨앗이 막 싹을 틔우려는 시점에 거름과 물을 거두는 것은 그리 지혜로운 선택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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